본문 바로가기
우리말 보물창고

‘압존법’, 직장에서 쓰면 ‘꼰대’ 소리 듣는 이유

by 우리말나침반 2025. 11. 13.

‘압존법’, 직장에서 쓰면 ‘꼰대’ 소리 듣는 이유

신입사원 시절, 혹은 사회초년생일 때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언어 고민이 있습니다. “부장님께 팀장님에 대해 말씀드릴 때, ‘김팀장님이 지시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김팀장이 지시했습니다’라고 해야 할까?” 이 작은 차이가 때로는 나를 ‘개념 있는 신입’으로 만들기도, ‘눈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이 혼란의 중심에는 ‘압존법’이라는 우리말 어법이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압존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직장에서 사용하면 자칫 ‘꼰대’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지 아주 쉽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압존법’, 직장에서 쓰면 ‘꼰대’ 소리 듣는 이유

압존법, 들어는 봤는데 정확히 뭔가요?

1. 압존법의 기본 개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화

압존법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가족 관계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압존법(壓尊法)이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 문장의 주어가 듣는 사람보다 낮은 사람일 경우 그 주어의 높임을 생략하는 어법입니다. 예를 들어,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때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아버지가 아직 안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통적인 압존법에 맞습니다. ‘아버지께서’가 아닌 ‘아버지가’라고 말하며 듣는 사람인 할아버지를 최고로 높이는 방식입니다.

2. 문법적으로는 맞지만, 어색함의 시작

이처럼 압존법은 본래 가정 내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언어 예절이었습니다. 문법적으로는 틀리지 않은 표현이지만, 이 규칙을 가족이 아닌 사회, 특히 직장에 그대로 적용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는 엄연히 다릅니다. 직장에서 상사를 마치 집안의 어른처럼 대하는 압존법의 사용은, 듣는 사람과 주변 사람 모두에게 어색하고 불필요한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직장 내 압존법 논란의 시작점입니다.

직장에서 압존법이 '꼰대'의 상징이 된 이유

1. 시대의 변화와 수평적인 조직 문화

과거의 직장은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문화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많은 기업들이 직급을 간소화하고, ‘님’으로 호칭을 통일하며 수평적인 소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압존법은 낡은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중시하는 현대 조직 문화에서, 굳이 상사들 간의 서열을 따져가며 말을 해야 하는 압존법은 소통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언어 예절의 기준도 함께 변한 것입니다.

2. 국립국어원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한 변화

“그래도 우리말인데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기준을 제시하는 국립국어원조차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인정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표준 언어 예절’에서 직장과 같은 사회에서는 압존법을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부장님 앞에서 팀장님을 높여 ‘팀장님께서’라고 말하는 것이 이제는 틀린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표현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입니다. 언어의 공식 기관마저 인정한 변화인 셈입니다.

3. 실제 직장 사례: 신입사원의 흔한 실수

신입사원 A씨가 박 부장에게 보고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A씨는 이 과장이 지시한 업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여기서 A씨가 압존법을 사용하면 "부장님, 이 과장이 지시한 내용입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 말을 들은 박 부장과 주변 동료들은 어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부장이 과장을 하대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부장님, 이 과장님께서 지시하신 내용입니다"라고 말하면 듣는 부장과 이야기의 주체인 과장 모두를 존중하는 표현이 되어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1. '모두 높임'이 가장 안전한 방법

결론부터 말하자면, 직장에서는 ‘모두 높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현명한 방법입니다. ‘모두 높임’이란, 듣는 사람의 직급과 관계없이 문장의 주체가 되는 상사 모두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대표님 앞에서 부장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대표님, 김 부장님께서 출장 준비를 마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복잡한 서열 계산 없이 모두를 높이는 것이 현대 직장 예절의 핵심입니다.

2. 압존법 대신 써야 할 존중의 언어

진정한 존중은 낡은 문법 규칙을 따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사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 업무 지시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실행하는 모습, 그리고 동료들과 협력하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압존법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에, 오히려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단어를 선택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더 나은 직장 생활을 위한 지름길입니다. 언어는 규칙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압존법은 우리말의 전통적인 어법 중 하나이지만, 그 쓰임새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특히 수평적인 소통을 중시하는 현대 직장 문화에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제 직장에서는 압존법 사용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듣는 사람과 이야기의 대상 모두를 존중하는 ‘모두 높임’의 원칙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언어는 사회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언어 예절을 유연하게 사용하는 지혜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전문가로 거듭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